고양이는 발톱 관리, 스트레칭, 영역 표시를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 긁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저희 집 고양이 자루도 예외가 아닌데, 솔직히 처음엔 어떤 스크래처를 사줘야 할지 전혀 감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자루를 위해 스크래처를 하나둘 들이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마다 긁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몸으로 직접 느꼈습니다.
자루가 알려준 것 — 수평형 스크래처의 발견
스크래처를 처음 고를 때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건 고양이가 집 안에서 어디를 주로 긁는가입니다. 카펫이나 러그처럼 바닥에 깔린 것을 긁는다면 수평형 스크래처(Horizontal Scratcher)가 잘 맞습니다. 수평형이란 바닥에 납작하게 놓이는 형태로, 고양이가 서거나 엎드린 자세 그대로 긁을 수 있는 스크래처를 말합니다.
자루는 딱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밖에서 돌아오면 현관 앞 매트를 긁고,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옆 카펫 귀퉁이를 긁었습니다. 아내가 제일 먼저 골판지(Corrugated Cardboard) 재질의 수평형 스크래처를 들여놨는데, 골판지 스크래처란 물결 모양의 골이 겹겹이 쌓인 판지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발톱에 잘 걸리고 부드럽게 찢어지는 질감 때문에 많은 고양이가 선호합니다. 자루도 처음 냄새 맡더니 바로 올라가서 긁었습니다.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비싼 제품을 사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단순한 골판지 하나에 자루가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거든요.
지금은 거실, 침실, 서재 구석에 각각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모양도 조금씩 다릅니다. 움푹 들어간 형태, 양쪽이 살짝 올라와 발을 얹고 쉴 수 있는 형태, 바구니처럼 오목하게 파여 몸이 딱 맞게 들어가는 형태. 수평형을 선호한다고 해서 똑같은 모양으로만 사줄 필요는 없다고 저와 아내는 생각했습니다. 자루가 한 가지 자세, 한 가지 공간에만 머무르는 건 실내 고양이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밤에 자루가 어디서 자나 봤더니, 바구니형 스크래처 안에 쏙 들어가서 웅크리고 있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화장실 다녀오면 어김없이 — 수직형 스크래처의 역할
수직형 스크래처(Vertical Scratcher), 즉 기둥 형태로 세워진 스크래칭 포스트(Scratching Post)는 처음에 자루가 잘 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캣타워를 들이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캣타워 기둥이 사이잘(Sisal) 소재로 감겨 있는 제품이었는데, 사이잘이란 천연 식물 섬유로 짠 거친 질감의 소재로, 발톱이 잘 걸리고 내구성이 강해 수직 스크래칭에 특히 적합한 재료입니다.
자루가 이걸 언제 쓰는지 직접 겪어보니 패턴이 명확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면 꼭 캣타워 기둥으로 가서 긁습니다.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그 순간 자루 몸을 보면, 저렇게 길었나 싶을 정도로 온몸이 위로 쭉 펴집니다. 이게 바로 수직형 스크래처의 핵심 기능입니다. 근막 이완(Myofascial Release)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몸의 결합 조직인 근막에 쌓인 긴장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효과를 뜻합니다. 고양이가 수직형 스크래처에서 온몸을 펴며 긁는 동작은 이 근막 이완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발톱 관리만이 아니라, 자루 입장에서는 일종의 기지개인 셈입니다.
수직형 스크래처를 고를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높이가 충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최대한 몸을 펼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짧은 기둥은 그냥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자루가 한번 기울어진 스크래처를 써봤는데, 딱 한 번 기울고 나서 그 제품은 다시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고양이는 불안정한 물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ASPCA 고양이 행동 가이드)
어디에 놓느냐가 반은 결정한다 — 스크래처 배치의 원칙
스크래처 종류를 잘 골라도 위치가 틀리면 고양이는 외면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처음에 거실 한쪽 구석,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스크래처를 뒀는데 자루가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자루가 주로 머무는 소파 옆, 창가 근처로 옮기고 나서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가 특정 장소를 긁는 이유 중 하나는 영역 표시(Scent Marking)입니다. 영역 표시란 발바닥의 취선(Scent Gland)에서 분비되는 페로몬을 표면에 남기는 행동으로, 고양이에게는 본능적인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고양이가 자주 오가는 동선 위에 스크래처가 있어야 이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습니다. 구석에 밀어놓으면 동선 밖이 되어버려, 아무리 좋은 스크래처도 그냥 장식이 됩니다.
저희 집에서 효과 있었던 배치 원칙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수평형 스크래처는 자루가 낮잠을 자거나 자주 쉬는 공간 바로 옆에 배치합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동선을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 수직형 스크래처(캣타워 기둥 포함)는 화장실 출구나 이동 경로 중간에 둡니다. 자루가 볼일 보고 나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긁게 됩니다.
- 새로운 스크래처를 들일 때는 기존에 자루가 잘 쓰는 스크래처 바로 옆에 먼저 놓고, 익숙해지면 원하는 위치로 조금씩 이동합니다.
- 스크래처를 처음 쓰게 하고 싶을 때는 캣닢(Catnip)을 살짝 뿌려서 관심을 유도합니다. 캣닢이란 고양이에게 일시적인 흥분 반응을 유발하는 허브 식물로, 약 70%의 고양이에서 반응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Cornell Feline Health Center)
- 공간이 좁은 아파트라면 수평형 하나, 수직형 하나를 세트로 두는 것이 현실적인 최소 구성입니다.
일반적으로 완벽한 스크래처 하나를 찾으면 된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자루를 보면서 느낀 건, 고양이는 생각보다 다양한 자세와 기분으로 긁는다는 것입니다. 누워서 가볍게 긁을 때가 있고, 몸을 최대한 뻗어 힘껏 긁을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스크래처가 그 모든 순간을 커버하기는 어렵습니다.
자루를 키우면서 스크래처 하나를 고르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고양이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떤 자세로, 어느 시간에, 어디서 긁는지를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고양이가 어떤 걸 원하는지 스스로 알려줍니다. 스크래처를 다양하게 배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크지 않지만, 그 효과는 가구를 지키는 것 이상입니다. 자루가 건강하게 발톱을 관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작은 골판지 하나가 꽤 많은 걸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스크래처를 고른다면 일단 골판지 수평형 하나와 사이잘 수직형 하나로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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