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7주, 이 짧은 시간이 고양이의 평생 성격을 결정짓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냥 귀여우니까 키우자는 마음이었는데, 제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다가 문득 이 작은 녀석의 미래가 지금 제 손에 달려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냥이를 원한다면, 그 시작은 분양받는 날이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회화(Socialization), 고양이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시간
사회화(Socialization)란 동물이 발달 과정에서 같은 종 또는 다른 종과의 접촉을 통해 함께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뜻합니다. 고양이에게는 생후 2주에서 7주 사이가 바로 이 사회화의 민감기(Sensitive Period)로, 이 시기에 사람의 손길을 충분히 경험한 고양이일수록 성묘가 되었을 때 사람과 편안하게 지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생후 8주가 지나도록 사람 손을 전혀 타지 못한 새끼 고양이는 나중에 사람과 유대감을 형성하기가 극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리를 처음 만났을 때 정말 손바닥에 꼬리까지 들어오는 크기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냥 귀엽다는 생각만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어릴 때 정서가 평생을 간다"고 하는 말, 고양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단순히 많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하루 40분 정도 스킨십을 해준 새끼 고양이가 15분만 접촉한 고양이보다 훨씬 친근하게 자랐고, 다만 하루 1시간을 넘기면 그 이상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양보다 질, 그리고 꾸준함이 핵심인 셈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직접 시도해보면서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은 다양한 사람이 고양이와 접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성, 남성, 아이, 어른 각각의 목소리와 손길이 고양이에게는 전혀 다른 자극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을 경험할수록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사회화와 함께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습관화(Habituation)입니다. 습관화란 반복적인 자극에 더 이상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는 과정으로, 진공청소기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낯선 냄새, 다양한 바닥 재질 같은 것들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출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리에게 종이봉투나 빈 박스를 아무렇게나 두는 것도 사실 이런 맥락에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민감기를 지나쳐도 바꿀 수 있을까, 유전 기질의 영향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릴 때 잘 만져주기만 하면 누구든 개냥이로 키울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고양이 행동에 관한 연구들을 찾아보다가 아버지 고양이의 기질이 새끼에게 유전된다는 내용을 보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새끼 고양이는 어미보다 아비 고양이에게서 기질(Temperament), 즉 타고난 행동 성향을 물려받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합니다. 기질이란 환경과 관계없이 개체가 선천적으로 지닌 반응 패턴을 뜻합니다. 아비가 대담한 성향이면 새끼도 새로운 것에 겁 없이 다가가는 경향이 있고, 소심한 성향의 아비를 둔 새끼는 자극에 쉽게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비가 새끼 양육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순전히 유전적으로 전달되는 특성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개냥이를 만난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그런 고양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건, 어쩌면 이런 유전적 확률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문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제 경험상 선천적으로 대담한 기질을 타고난 고양이와 소심한 기질을 가진 고양이는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반응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소심한 기질의 고양이가 평생 그대로인 것은 아닙니다. 사회화 시기에 충분한 접촉과 긍정적 경험을 쌓으면, 소심한 성향의 새끼도 나중에 친근한 성묘로 자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유전이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래는 새끼 고양이의 사회화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 접촉 빈도: 하루 약 40분의 스킨십이 가장 효과적이며, 1시간 이상은 추가 효과가 미미하다.
- 접촉 다양성: 여성, 남성, 어린이, 성인 등 다양한 사람이 새끼 고양이를 접촉할수록 낯선 사람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진다.
- 시기의 적절성: 생후 2~7주의 민감기 안에 사회화가 시작되어야 성묘 이후까지 효과가 이어진다.
- 유전 기질: 아비 고양이의 대담함 또는 소심함 성향이 새끼에게 유전되어 사회화 반응에 차이를 만든다.
- 습관화 경험: 다양한 소리, 냄새, 재질 등의 환경 자극에 어릴 때부터 노출되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중 한두 가지만 충족한다고 해서 개냥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 개냥이가 흔하지 않을 수밖에요.
그래서 제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직접 키워보면서 느낀 것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전, 저는 제리를 만났습니다. 그 당시 제리는 성인 남자 손바닥 위에 꼬리까지 얹힐 만큼 작았고, 그걸 보고 있으면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귀여워서 시작한 일인데, 키우면서 점점 이게 육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먹는 것, 자는 것, 행동 패턴,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정말 아이를 돌보는 기분입니다.
제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집 안에서 나는 여러 소리에 겁먹지 않도록, 여러 사람의 손을 타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행동 전문가인 사라 브라운 박사도 이런 부분을 강조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정말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처음엔 낯선 소리에 잔뜩 움츠러들던 제리가 지금은 웬만한 소음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게 습관화(Habituation)의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리의 기질이 원래 어떤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비 고양이를 만난 적도 없고, 순수하게 유전적으로 어떤 성향을 받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다만 지금 제리의 모습을 보면, 낯선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는 편이고, 무릎 위에 올라오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처제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이 어릴 때부터 쌓아온 긍정적 접촉의 결과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 덕분인지는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두 가지가 함께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반려묘와의 애착 형성에 대해 더 깊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고양이 행동 연구를 다룬 사라 브라운 박사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보시길 권합니다(출처: Psychology Today). 또한 국내에서도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반려동물 복지 및 행동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함께 살펴보시면 도움이 됩니다(출처: 농림축산검역본부).
개냥이를 원한다면, 분양처를 고르는 것보다 어릴 때 어떻게 함께하느냐가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 해 봅니다. 물론 유전 기질이라는 변수는 어쩔 수 없지만, 민감기에 충분한 접촉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제리를 키우면서 확실히 느낀 것은, 고양이도 사람처럼 어릴 때의 경험이 평생을 간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아기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면, 지금 이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소중합니다.
--- 참고: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animal-emotions/202003/the-cat-human-relationship-and-factors-that-affec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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