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장인어른과의 관계가 가장 큰 걱정 중 하나였는데, 그 걱정을 해결해준 것이 사람도, 시간도 아닌 고양이 한 마리였으니까요. 고양이가 사람의 감정을 바꾸고, 관계를 녹인다는 말이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목격한 장면은 그 어떤 설명보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목수 장인어른과 고양이, 그리고 제가 처음 목격한 장면
장인어른은 평생 목수 일을 하신 분입니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시고, 표현도 투박하십니다. 사위인 저를 대하는 태도도 그랬습니다. 틀렸다기보다는, 딸을 데려가는 남자에게 선뜻 마음을 열기 어려우셨겠구나 싶어서 저는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제가 딸을 가진 아버지였다면, 아마 저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리가 처가에 오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제리는 처가에서 키우는 고양이입니다. 집 주변 길고양이에게 사료나 츄르를 주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기시던 분이 고양이를 집 안으로 들이셨고, 그 이후의 변화는 제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픈 제리가 장인어른의 발에 와서 비빌 때, 장인어른이 꺼내신 말이 "우리 강아지"였습니다. 고양이한테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시는 장인어른. 아내도, 처제도 처음 듣는 말투였다고 했습니다. 그 억양이, 그 부드러움이, 솔직히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 어르신들이 손주를 부를 때 "우리 강아지"라고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인어른이 고양이에게 그 말을 하셨다는 건, 제리가 그분에게 손주와 비슷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이겠지요. 제 생각에는 제리가 처가집의 진짜 복덩이입니다.
고양이가 공감 능력을 키운다는 말, 이게 진짜일까요
고양이가 사람의 공감 능력(empathy)을 높여준다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공감 능력이란 타인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고 그에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정말 그 능력을 키워준다고 볼 수 있을까,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비언어적 신호(non-verbal cue)에 의존해서 소통합니다. 비언어적 신호란 말 대신 몸짓, 꼬리의 움직임, 눈을 깜박이는 방식 같은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이 신호들을 읽으려고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는데, 이 훈련이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연습을 고양이를 통해 하게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6%가 반려동물이 자신의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습니다. 숫자가 작지 않습니다. 물론 이 수치가 고양이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반려동물과의 정서적 교감이 가져오는 심리적 효과가 꽤 실질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코르티솔(cortisol) 수치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코르티솔이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흔히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립니다. 고양이와 교감하면 이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지고, 반대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엔도르핀(endorphin) 분비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장인어른이 제리를 쓰다듬으시며 표정이 풀리는 걸 보면, 그 연구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양이가 공감 능력을 키운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분들도 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 멋대로 사는 동물인데 무슨 공감이냐"는 시각이죠.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제리가 장인어른 발 아래에 인형을 물어다 놓는 행동, 배고프면 딱 그 사람 발에만 비비는 선택적 애정 표현, 이런 것들을 읽어내려면 오히려 사람보다 더 섬세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그 관찰 능력이 쌓이면 사람 사이에서도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정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 감소 및 엔도르핀 분비 증가로 인한 기분 개선
- 고양이의 비언어적 신호를 읽는 훈련을 통한 공감 능력 및 감정 민감도 향상
- 규칙적인 먹이 주기, 놀이, 그루밍 등의 루틴이 보호자의 생활 패턴을 안정시키는 효과
- 반려동물의 존재 자체가 고독감과 고립감을 줄이는 정서적 지지대 역할
정서적 유대가 일어난다
제가 직접 써봤다기보다는, 직접 목격했습니다. 제리가 집에 온 이후 장인어른의 일상이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제리 밥을 챙기고, 저녁에 제리가 물어온 장난감으로 잠깐 같이 놀아주는 루틴이 생겼습니다. 이 루틴이 주는 효과를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행동 활성화란 작은 행동의 반복이 동기 부여와 정서 안정에 기여하는 심리치료적 접근 방식입니다. 고양이를 돌보는 소소한 행동들이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해낸 셈입니다.
반려동물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거창한 대화나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그냥 옆에 있어 주는 존재. 배고프면 찾아오고, 좋으면 비비고, 편하면 같이 자는 그 단순한 관계가 사람 마음을 조금씩 열어줍니다. 특히 감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 오랫동안 혼자 감정을 눌러온 분들에게는 그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적 고립감을 완화하는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고양이를 화제로 대화가 시작되고, 그 대화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장인어른이 제리 이야기를 꺼내실 때면, 그게 저와의 대화가 가장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어색한 사위와 장인 사이의 거리를 좁혀줬다고 하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진심입니다.
고양이의 정서적 웰빙도 중요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FELIWAY 연구 블로그에 따르면, 고양이도 스트레스나 불안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고, 보호자가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고양이와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킨다고 합니다. 주는 만큼 돌아온다는 말이 반려동물 관계에서도 꽤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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