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무심하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 고양이 제리를 관찰하다 보니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고양이는 보호자의 감정을 냄새로 읽어내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친숙한 냄새를 구분하는 수준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스트레스 같은 감정 상태까지 후각으로 파악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분이라면 이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제리의 코가 바빠진 순간
제리가 저희 집에 들어온 뒤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장모님도, 처제도, 아내도 온통 제리 사진 찍기에 바쁜 일상이 됐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제리 얼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는데, 그러다 발견한 게 있었습니다. 입 주변 하얀 털 사이에 갈색 무늬가 하나 있는 겁니다. 처제와 아내는 그걸 보고 "초코우유 먹은 제리"라며 한참 웃었고, 저는 그게 계기가 되어 제리 얼굴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제리의 코였습니다. 누군가 새로 다가오거나,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 들어오면 제리는 코를 아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냄새로 낯섦과 익숙함을 먼저 확인하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양이의 후각(嗅覺), 즉 냄새를 맡는 감각이 단순한 생존 도구 이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후각은 고양이의 사회적 행동에서 핵심 역할을 합니다. 영역 표시, 개체 식별, 먹이 탐색 모두 냄새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제리가 낯선 사람 앞에서 코를 바짝 들이미는 행동도 사실 고도의 정보 수집 활동이었던 셈입니다.
고양이의 감정감지, 연구로 확인된 사실
이탈리아 바리 알도 모로 대학교 연구진이 진행한 실험이 있습니다. 연구진은 두려움, 행복, 신체적 스트레스, 중립 상태에 있는 사람의 체취 샘플을 채취해 고양이 22마리에게 제시했습니다. 체취 샘플(Chemical Odor Sample)이란 땀 등 신체에서 분비되는 화학 물질을 채취한 것으로, 감정 상태에 따라 성분 구성이 달라집니다. 이 실험에서 고양이는 "두려움" 냄새에 노출됐을 때 스트레스 행동이 가장 뚜렷하게 증가했습니다. 제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냄새로 감정을 구분한다는 게 이렇게 실험으로 입증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양이의 반응을 분석할 때 연구진은 행동 코딩(Behavioral Coding)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행동 코딩이란 관찰된 행동을 미리 정의된 범주에 따라 분류하고 기록하는 방법으로, 주관적인 해석을 줄이고 데이터를 객관화하는 데 쓰입니다. 고양이의 행동은 크게 세 단계로 분류됐습니다.
- 휴식 상태: 차분히 앉아 귀를 앞으로 향하고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는 상태
- 중간 스트레스 상태: 꼬리 끝을 씰룩거리고 귀를 뒤로 살짝 젖히는 상태
- 심한 스트레스 상태: 몸을 움츠리고 귀를 납작하게 뒤로 붙이는 상태
"두려움" 냄새에 노출된 고양이는 "중립" 냄새에 비해 2단계, 3단계 행동이 눈에 띄게 많이 나타났습니다. 반면 편안한 행동 자체는 냄새 종류와 관계없이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위협 신호에는 반응하되, 안정감 자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Noldus 행동 연구 블로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콧구멍반응, 뇌와 연결된 정교한 신호
이 연구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고양이가 어느 쪽 콧구멍을 사용하느냐는 점이었습니다. 고양이는 "두려움"이나 "신체적 스트레스" 냄새를 맡으며 심한 스트레스 행동을 보일 때 오른쪽 콧구멍을 더 자주 사용했습니다. 반대로 편안한 상태에서는 왼쪽 콧구멍 사용 빈도가 높았습니다.
이게 단순한 우연처럼 보일 수 있지만, 뇌의 편측화(Lateralization)로 설명됩니다. 편측화란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가 서로 다른 종류의 자극을 처리하도록 기능이 나뉘어 있는 현상을 뜻합니다. 오른쪽 콧구멍은 뇌의 우반구와 연결되어 있고, 우반구는 두려움이나 분노처럼 강렬하고 부정적인 감정 처리를 담당합니다. 왼쪽 콧구멍은 좌반구와 연결되며, 좌반구는 긍정적이고 친사회적인 반응을 조율합니다. 고양이의 콧구멍 사용 패턴은 이 뇌 기능 분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던 겁니다.
동물의 뇌 편측화는 고양이뿐 아니라 개, 말, 돌고래 등 다양한 종에서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 데이터베이스에서도 관련 연구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가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그 냄새를 어느 쪽 뇌로 보낼지까지 자동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정교한 시스템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시선으로 제리를 보게 만든 발견이었습니다. 제리가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코를 들이밀며 한참 냄새를 맡던 그 행동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저라는 존재를 뇌 수준에서 분류하는 작업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유대, 고양이가 감정을 읽는 방식의 한계와 가능성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 고양이는 "두려움"과 "행복" 냄새 사이에서 행동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정적 감정에는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긍정적 감정을 냄새만으로 구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겁니다. 연구진은 이것이 각성 수준(Arousal Level) 때문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각성 수준이란 유기체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신체적·심리적 활성화 정도를 뜻합니다. 두려움과 행복은 모두 높은 각성 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에, 고양이가 두 감정을 같은 수준의 경계심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도 후각으로 상당한 정보를 얻습니다.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공간에서 생활하는지, 심지어 언제 세탁을 했는지까지 냄새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후각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보를 읽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보다 후각이 훨씬 발달한 고양이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냄새로 처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무감각하고 독립적인 동물이라는 인식은 이제 조금씩 수정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표현 방식이 조용할 뿐, 감지하는 정보의 양과 깊이는 결코 얕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보호자의 감정 상태를 냄새로 인식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조율합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양이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제리 덕분에 저는 고양이를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특별히 훈련받지 않아도 고양이는 이미 보호자를 세밀하게 읽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분이라면 오늘 한 번 고양이가 코를 움직이는 순간을 관찰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작은 코 안에서 얼마나 정교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신비로움이 느껴지실 겁니다. 고양이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고양이가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먼저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 참고: https://noldus.com/blog/cats-react-to-human-emotional-scents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51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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