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화단 옆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친 적 있으신가요? 도망갈 것 같으면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않는 그 고양이, 십중팔구 코리안 숏헤어입니다. 저도 제리를 키우기 전까지는 길고양이를 그냥 "아무 고양이"라고 생각했는데, 품종을 알고 나니 보이는 게 달라졌습니다.
코리안 숏헤어, 품종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요?
코리안 숏헤어(Korean Shorthair)는 한국에서 자연적으로 서식해 온 단모 고양이를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줄여서 "코숏"이라고도 부르는데, 특정 혈통을 선택적으로 교배해서 만들어진 품종이 아니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쉽게 말해, 수천 년 동안 자연 도태와 환경 적응을 거치며 살아남은 고양이들의 집합체입니다.
모든 집고양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프리카 야생고양이(Felis silvestris lybica)에 닿습니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인간과 공생하며 해충 방제를 담당해 온 고양이들이 문명과 함께 이동하면서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택적 번식(selective breeding), 즉 특정 형질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교배하는 방식이 본격화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라, 그 이전까지 대부분의 고양이는 지금의 코숏과 비슷한 혼혈 상태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코리안 숏헤어에서 꼬리가 짧거나 구부러진 형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 고양이가 일본의 재패니즈 밥테일(Japanese Bobtail) 품종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제리 꼬리를 볼 때마다 이 이야기가 떠올라 혼자 웃곤 합니다.
건강의 아이콘 , 코숏은 정말 튼튼한가요?
코리안 숏헤어 하면 가장 먼저 따라오는 수식어가 "체육 고양이"입니다.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 즉 인위적 개입 없이 환경에 적합한 개체만 살아남는 과정을 수천 년간 거쳐 왔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강인하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순종 품종에 비해 유전성 질환이 적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건강하다"는 말을 너무 맹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기 때 제리는 건강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습니다. 처제와 아내가 교대로 밤을 지새우며 분유를 먹이고, 체온 유지를 위해 품에 안고 잤습니다. 병원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품종이 건강하다는 것과, 그 개체가 처한 환경이 건강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특히 길고양이로 살아온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길고양이들이 실제로 노출되는 주요 건강 위협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고양이 범백혈구감소증(FPV): 디스템퍼라고도 불리며, 감염 시 치사율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성 질환입니다.
- 고양이 면역결핍 바이러스(FIV): 사람의 HIV와 유사한 방식으로 면역 체계를 서서히 무너뜨립니다. 주로 싸움 중 교상(咬傷)으로 전파됩니다.
- 고양이 백혈병 바이러스(FeLV): 면역 억제와 종양 유발이 주된 문제로, 집단 생활을 하는 길고양이 집단에서 전파 속도가 빠릅니다.
- 내외부 기생충 감염: 회충, 조충, 귀진드기, 벼룩 등 다양한 기생충에 상시 노출되어 있습니다.
- 영양 불균형: 쓰레기통 음식이나 불규칙한 급식으로 인해 만성적인 영양 결핍 상태에 놓이기 쉽습니다.
수명도 차이가 납니다. 실내에서 관리를 받는 고양이가 평균 15년 안팎을 사는 데 비해,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2~10년으로 훨씬 짧습니다. 품종의 유전적 강인함만으로는 열악한 환경을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수치는 글로벌 동물 유전자 분석 기업인 위즈덤 패널(출처: Wisdom Panel)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고양이의 성격, 가까이 다가가도 괜찮을까요?
길에서 마주친 코숏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냉큼 도망가버린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길고양이들은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접촉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회화(socialization)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자극과 접촉을 통해 사람이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뜻하는데, 길고양이 대부분은 이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과거 고양이를 불길하다고 여기거나, 길고양이를 골칫거리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했습니다. 사람에게 쫓기거나 학대를 경험한 고양이일수록 방어적인 행동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리도 처음에는 손을 가까이 대면 몸을 잔뜩 웅크렸는데, 그게 제리 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뒤로 조금 더 느긋하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모든 길고양이가 사람을 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과 접촉이 있었거나, 캣맘·캣대디들에게 꾸준히 급식을 받아온 개체들은 상대적으로 붙임성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일부 코숏은 실내 생활에도 잘 적응해서, 입양 후 안정적인 반려묘로 자리를 잡기도 합니다. 서울시에서도 TNR(중성화 후 방사) 사업을 통해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고 사람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출처: 서울시 뉴스).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돌보는 게 맞을까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줄지 말지는 여전히 논란이 있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만약 먹이를 주기로 했다면, 방식이 중요합니다. 생선 뼈나 남은 음식 찌꺼기보다는 시판 고양이 사료를 주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소화 체계에 맞지 않는 음식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미용 면에서는 길고양이들이 그루밍(grooming), 즉 혀로 자기 털을 다듬는 자가 청결 행동을 꽤 꼼꼼하게 합니다. 덕분에 겉으로는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부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성 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길고양이를 입양했다면 입양 직후 동물 병원에서 건강 검진과 기본 접종을 받는 것이 필수입니다.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수컷 길고양이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목이 굵어지고 근육량이 늘며 영역 싸움으로 인한 상처가 생기기 쉽습니다. 이 상처가 FIV 전파 경로가 되기도 하므로, 중성화는 개체 건강과 개체 수 조절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제 경험상 이런 기본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제리를 처음 데려왔을 때 좀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코리안 숏헤어는 분명 유전적으로 강인한 고양이입니다. 하지만 그 강인함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제리를 통해 배운 것은, 어떤 고양이든 제대로 돌봄을 받아야 비로소 건강해진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이었습니다. 길고양이에게 관심이 생겼다면, 먹이를 주는 것 하나에서 시작해도 좋습니다. 다만 그 다음 단계로 입양을 고민하신다면, 가까운 동물 병원에 먼저 상담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wisdompanel.com/en-us/cat-breeds/korean-street-cathttps://news.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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