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고양이가 저를 어떻게 볼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모님 댁에 고양이 제리가 집에 온 뒤로, 가족들이 저마다 자기를 "언니", "할머니", "누나"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서 이 엉뚱한 궁금증이 진짜 질문이 되어버렸습니다. 고양이는 우리를 어떻게 인식할까요? 연구 결과와 제리와의 경험을 함께 풀어봤습니다.
제리가 데려온 질문: 고양이는 우리를 어떤 존재로 인식할까
제리는 수컷 아기 고양이입니다.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처제는 자신을 "언니", 장모님은 "할머니", 장인어른은 "할아버지", 아내는 "누나"라고 소개했습니다. 저는 "형"으로 등록됐고요. 사람도 아닌 고양이한테 가족 호칭을 붙이는 게 처음엔 좀 우습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제리가 처제 품에만 가면 유독 얌전해지는 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거, 그냥 감정이 아니라 뭔가 인지적(Cognitive)인 구분이 있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인지(Cognition)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여 판단하는 정신 활동 전반을 뜻합니다. 고양이도 이 능력이 있다는 연구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고양이가 인간을 대할 때와 다른 고양이를 대할 때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 방식을 거의 바꾸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행동이란 같은 집단 안에서 유대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모든 행동 패턴을 말합니다. 개는 사람 앞에서 행동을 확연히 달리하는 반면, 고양이는 그 경계가 흐릿합니다.
이 말은 곧, 고양이가 우리를 "인간"이라는 별개의 종으로 분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보다는 냄새, 소리, 접촉 패턴으로 "이 존재는 나한테 안전한가, 아닌가"를 먼저 판단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처제가 제리를 거의 육아하듯 돌봤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제리 입장에서 처제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 기지(Safe Base)처럼 각인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실제로 보내는 신호: 행동으로 읽는 인지 과학
제리를 관찰하다 보면 장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날은 제 발치에 와서 몸을 비비고, 또 어떤 날은 저를 보자마자 전속력으로 도망칩니다. 저는 "형"인데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건 후각 신호(Olfactory Signal)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후각 신호란 냄새를 통해 상대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동물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저는 집에 자주 오지 않아서 제리에게 제 냄새가 충분히 각인되지 않은 상태였던 거죠. 그러니 낯선 냄새가 풍기면 경계 반응이 나오는 겁니다.
고양이 행동 연구에서 주목받는 행동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번팅(Bunting): 머리나 이마를 대상에 비비는 행동으로, 페로몬(Pheromone)을 통해 "내 것"이라고 표시하는 애정 신호입니다.
- 슬로우 블링크(Slow Blink):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행동으로, 긴장을 풀고 신뢰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고양이끼리 할 때와 사람에게 할 때가 동일합니다.
- 알로그루밍(Allogrooming): 상대방의 털을 핥아주는 행동으로, 가까운 무리 안에서만 나타나는 친밀감의 표현입니다.
- 프레이 기프팅(Prey Gifting): 사냥한 먹이를 가져다주는 행동입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에게 먹이를 가르치는 방식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이 네 가지 행동의 공통점은 모두 고양이끼리 주고받는 사회적 신호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는 이 신호들을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즉, 고양이 눈에 우리는 "다른 종"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 집단 안에 있는 존재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출처: Science Advances, 고양이 사회적 인지 연구).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성묘는 다른 고양이에게는 거의 야옹거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야옹거립니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학습된 발성(Learned Vocalization)이라고 봅니다. 학습된 발성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울음소리가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후천적으로 발달시킨 의사소통 수단을 뜻합니다. 고양이가 인간 아기의 울음 주파수와 유사한 음역대로 야옹거린다는 연구도 있는데, 이건 제리를 보면서 실감했습니다. 배고플 때와 놀고 싶을 때 울음소리의 높낮이가 다르거든요.
집사 관계 설정: 제리에게 저는 어떤 존재여야 할까
솔직히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가 집사를 "큰 고양이" 정도로 본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제리한테 그 정도 위상도 못 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몇 번은 가까이 다가갔다가 물리기도 했고, 조그만 이빨이라 아프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러웠습니다. 아기 고양이 이빨이 워낙 작아서 무는 게 귀엽게 느껴지는 건 사실인데, 그게 경계 반응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을 고양이에게 적용한 연구들이 있습니다. 애착 이론이란 어린 시절 특정 대상과의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관계를 형성하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처제가 제리를 거의 매일 돌봤다면, 제리에게는 처제가 1차 애착 대상(Primary Attachment Figure)으로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저처럼 가끔 오는 존재는 여전히 "검증 중인 타인" 범주에 있는 거죠. 그 증거가 바로 저를 보자마자 달아나는 제리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관계를 쌓을 수 있을까요? 제가 실제로 시도해봤을 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먼저 다가가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입니다. 제리가 스스로 냄새를 맡으러 올 때까지 기다렸더니, 그 다음 방문에서는 확실히 경계심이 줄어 있었습니다. 고양이와의 신뢰 관계는 속도를 고양이가 정합니다. 제리 입장에서 저를 "안전한 존재"로 재분류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건 제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져도 제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출처: NCBI, 고양이-인간 애착 행동 연구).
결국 제리가 저에게 천천히 다가와 냄새를 맡던 날,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번팅을 경험했고, 이게 왜 집사들이 고양이한테 빠져드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 조그만 존재에게 인정받는 순간이 이렇게 뿌듯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리를 보면서 한 가지 분명해진 게 있습니다. 고양이는 우리를 사람으로 보든 큰 고양이로 보든,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호칭이 "형"이든 "할머니"든 고양이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냄새, 반복된 접촉, 안전한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자신의 사회 집단 안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려묘를 키우고 있다면, 고양이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보시길 권합니다. 그 순간이 오면 왜 사람들이 집사가 되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될 겁니다.
참고: https://nutri-paw.com/blogs/blog/do-cats-see-us-as-humans?srsltid=AfmBOopmArPZ7hVLUZ3Gem2RAVIYzWd7GRy_HRCG2eqHVJtWIYDS0V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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