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밥을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면 편의점에서 오징어나 새우 과자를 집어 주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고양이가 탄수화물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자루와 제리를 키우면서 먹이는 것 하나하나가 달라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 소화 능력, 사람과 얼마나 다를까
고양이는 췌장 아밀라아제(pancreatic amylase) 수치가 개의 5% 수준에 불과합니다. 췌장 아밀라아제란 녹말을 분해하는 소화 효소인데, 쉽게 말해 밥이나 빵 같은 탄수화물 음식을 소화할 때 꼭 필요한 물질입니다. 개는 침에서도 이 효소가 분비되지만, 고양이는 침 속에 아밀라아제가 아예 없습니다.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 제가 직접 찾아보면서 두 번, 세 번 확인했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고양이는 수크라아제(sucrase)와 락타아제(lactase) 수치도 낮습니다. 수크라아제는 설탕(자당)을 분해하는 효소이고, 락타아제는 우유에 들어 있는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입니다. 그러니까 고양이에게 우유를 주는 행동도 사실 좋은 게 아니었던 셈입니다. 4kg 고양이 기준으로 우유 상한선이 하루 85ml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고양이가 우유를 좋아한다는 이미지를 그대로 믿고 있었는데, 직접 알고 보니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탄수화물을 건물(乾物) 기준으로 40% 이상 공급하면 설사, 복부 팽만 같은 소화 불량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고혈당 같은 대사 이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익힌 녹말은 35%까지는 소화가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소화할 수 있다는 것과 건강에 좋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저탄수화물 식단이 권장되는 이유
고양이의 조상인 야생 고양이의 하루 에너지 섭취 비율을 보면 단백질 52%, 지방 46%, 탄수화물 2% 수준입니다. 집고양이는 외형과 일부 행동에서 차이가 있을 뿐, 신진대사와 생리 구조는 야생 고양이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고양이가 고탄수화물 식단을 오래 먹으면 신체에 스트레스를 주고 장기적으로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은 다수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포도당 신생합성(gluconeogenesis)이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포도당 신생합성이란 고양이가 탄수화물 없이도 단백질로부터 스스로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합니다. 고양이는 임신이나 수유 같은 에너지 소비가 많은 시기에도 이 메커니즘이 충분히 작동하기 때문에, NRC, AAFCO, FEDIAF 같은 권위 있는 고양이 영양 기준표에는 탄수화물 항목 자체가 없습니다. AAFCO는 미국사료관리협회로 반려동물 사료의 영양 기준을 정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입니다(출처: AAFCO 공식 사이트).
고양이에게 선택권을 줬을 때 어떤 비율의 사료를 선택하는지 관찰한 연구들도 있습니다.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양이는 자발적으로 탄수화물 비율이 낮은 사료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하루 대사 에너지의 약 10% 미만 수준을 선호했습니다.
- 탄수화물이 높고 단백질이 낮은 사료를 급여하면 단백질과 전체 에너지 섭취량이 부족해질 수 있었습니다.
- 기호성 증진제를 사용하거나 동물성 단백질을 밀 글루텐 또는 완두콩 단백질로 대체했을 때, 고양이가 고탄수화물 사료를 선택하도록 유도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세 번째 항목이 저는 특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고양이가 사료를 선택하는 기준이 성분보다 맛 향상제에 좌우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사료 성분표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과 비만에 대한 연구도 주목할 만합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호르몬에 세포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로, 당뇨병과 직결되는 대사 문제입니다. 여러 연구에서 고탄수화물 식단이 고양이에게 인슐린 저항성과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반대로 저탄수화물 식단이 당뇨 개선과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도 축적되고 있습니다(출처: PubMed 고양이 탄수화물 관련 연구).
사료 선택,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자루와 제리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사료 성분표를 처음 들여다봤을 때, 솔직히 뭐가 뭔지 몰랐습니다. 제조사가 라벨에 탄수화물 함량을 표시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탄수화물 함량을 어림잡아 계산하는 공식이 있긴 합니다. 100%에서 단백질, 지방, 조섬유, 회분(무기질), 수분 비율을 빼면 대략적인 수치가 나옵니다. 이 값을 질소 무함유 추출물(NFE, Nitrogen Free Extract)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전분과 수용성 섬유질을 합친 탄수화물 추정치입니다.
곡물 프리(grain-free) 사료가 탄수화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써보고 알아보니 전혀 다릅니다. 곡물 프리 사료는 쌀이나 밀 대신 감자, 완두콩 같은 전분 공급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탄수화물 함량 자체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대체 전분 원료는 소화율이 낮아 복부 팽만이나 가스 같은 소화 불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보이는 길고양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합니다. 어떤 고양이는 탄수화물이 섞인 음식을 먹으면서도 나름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적응하는 개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양이의 소화 기관과 대사 구조가 탄수화물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능한 한 저탄수화물 사료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안전한 방향입니다. 전문 용어가 낯설어도 성분표를 꼼꼼히 보는 습관 하나가 고양이 수명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고양이에게 좋은 식단은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성분표 안에 있습니다. 저탄수화물 사료를 고를 때는 대사 에너지 기준으로 탄수화물이 5~10% 미만인 제품을 확인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사료를 바꾸기 전에는 수의사와 먼저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의견 공유이며, 전문적인 수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 참고: https://thelittlecarnivore.com/en/blog/cats-and-carbohydrates-myths-and-truths-raw-di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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