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불 위에 올라온 고양이가 앞발을 번갈아 가며 꾹꾹 누르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뭔가 불편한 건가 싶어서 이불을 치워줬는데, 알고 보니 그게 오히려 방해가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고양이의 꾹꾹이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꾹꾹이는 원래 새끼 때 배우는 행동입니다
꾹꾹이가 처음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고 나면 이 행동이 새삼 다르게 보입니다. 새끼 고양이는 수유(授乳) 중에 어미 젖꼭지 주변을 앞발로 반복해서 누릅니다. 수유란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누르는 동작이 젖샘을 자극해서 젖이 더 원활하게 나오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꾹꾹이는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생존과 연결된 본능적 행동인 셈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행동이 성묘(成猫)가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묘란 다 자란 어른 고양이를 뜻합니다. 정확히 왜 어떤 고양이는 성묘가 되어서도 꾹꾹이를 계속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습니다. 고양이 행동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 중인 주제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오히려 고양이라는 동물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고양이 자루도 분명 성묘인데, 특정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꾹꾹이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꾹꾹이가 단순한 버릇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자동반응인가, 의식적인 행동인가
꾹꾹이가 왜 계속되는지에 대해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가설 중 하나는 자동반응(Automatic Response) 이론입니다. 자동반응이란 특정 자극이 주어졌을 때 의식적인 판단 없이 몸이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조건반사(條件反射)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조건반사란 특정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후 그 자극만으로도 특정 반응이 유발되는 현상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새끼 시절 발바닥으로 느꼈던 특정 감촉이 꾹꾹이 행동을 각인시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소재에 발바닥이 닿으면 뇌에 저장된 기억이 자동으로 반응을 끌어낸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가설은 꾹꾹이 행동 자체가 엔도르핀(Endorphin) 분비를 촉진한다는 것입니다. 엔도르핀이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행복감과 이완감을 만들어내는 호르몬입니다. 이 가설이 맞다면 고양이는 꾹꾹이를 통해 스스로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내는 셈이 됩니다.
자루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자동반응보다는 의식적인 선택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 이불에서나 꾹꾹이를 하는 게 아니라, 분명히 특정 조건이 갖춰졌을 때만 하거든요. 그 조건이 뭔지가 저에게는 오랜 궁금증이었습니다.
색깔 기억, 자루가 알려준 뜻밖의 사실
자루가 처음 저희 집에 온 날, 겁을 먹고 침대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침대에는 노란색 이불이 깔려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출근하고 돌아왔더니, 자루는 어느새 침대 위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아마 혼자 있는 동안 천천히 올라가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어 이불을 교체했을 때부터 이상한 패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노란색 이불이 깔리는 날이면 자루가 침대에 올라오는 빈도가 확연히 높아지는 겁니다. 다른 색 이불일 때는 올라오다가도 금방 내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노란 이불 위에서는 꾹꾹이까지 하면서 한참을 머무릅니다. 제가 직접 눈으로 반복해서 확인한 패턴입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는 색각(色覺)이 사람보다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색각이란 색을 구별하는 시각 능력을 말하며, 고양이는 청색과 황록색 계열은 인식하지만 붉은 계열은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Cornell Feline Health Center). 그렇다면 자루가 노란색 이불을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고, 그 색을 처음 안정감을 느꼈던 기억과 연결 짓는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사람도 어린 시절에 좋은 기억을 남긴 색이나 냄새에 오랫동안 반응하는 것처럼요.
꾹꾹이를 자주 하는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런 패턴이 반복됩니다.
- 노란색 이불이 깔린 침대 위에 올라왔을 때
- 저나 아내가 노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을 때, 이불 속 발 위에서
- 집에 들어온 직후 잠시 조용한 시간이 생겼을 때
- 저나 아내 곁에 바짝 붙어 앉은 상태에서
이 패턴을 보면 꾹꾹이가 단순히 부드러운 촉감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 처음 안정감을 느꼈던 환경 전체를 기억하고 반응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꾹꾹이는 고양이가 보내는 신뢰 신호입니다
꾹꾹이가 어미에게 하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행동의 방향이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자루가 저와 아내의 발 위에서 꾹꾹이를 할 때, 저는 그게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신뢰 표현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어미에게 느꼈던 안도감과 편안함을 지금의 환경, 그리고 저희에게 느끼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요?
고양이 행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꾹꾹이를 영역 표시(Territorial Marking)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영역 표시란 자신의 냄새를 묻혀 특정 공간이나 대상이 자신의 것임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고양이 발바닥에는 페로몬(Pheromone)을 분비하는 땀샘이 있기 때문입니다. 페로몬이란 같은 종의 개체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화학 신호입니다(출처: Cats Protection).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루가 노란 이불 위에서 꾹꾹이를 하는 것은 "이곳은 내 안식처"라는 선언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이불 색깔을 기억하고, 그 이불 위에서 특정 행동을 더 자주 한다는 게 처음에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계절마다 이불을 바꿀 때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걸 보고 나서는 우연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꾹꾹이는 고양이가 그냥 멍하니 하는 동작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 행동이 나올 때는 고양이가 그 공간과 그 사람을 충분히 신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루가 노란 이불 위에서 앞발을 꾹꾹 누를 때, 그리고 이불 속 발 위에서 같은 행동을 할 때, 저는 그냥 귀엽다고 웃고 끝내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키우고 계신다면 꾹꾹이가 나오는 상황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조건에서, 어디서, 누구에게 하는지를 기록해 보면 여러분 고양이만의 패턴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참고: https://www.cats.org.uk/cats-blog/why-do-cats-knead.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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