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아무 이유 없이 우다다 하며 뛰어다닌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제리가 거실을 가로질러 전력 질주하고, 소파 위를 넘고, 커튼 앞에서 갑자기 멈추는 걸 보면서 "얘 왜 저러지?" 했거든요. 그런데 파고 들수록, 이 행동 하나에 수면 리듬부터 호르몬 이상까지 제법 복잡한 원인 들이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수면 습관이 만들어내는 에너지 폭발
고양이는 하루 평균 12시간에서 16시간을 잠으로 보냅니다. 성인 인간의 수면 시간이 7~8시간인 걸 감안하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문제는 이 긴 휴식이 끝난 직후입니다. 축적된 에너지가 한꺼번에 방출되는 시간이 바로 '줌미(Zoomies)'가 터지는 순간입니다.
줌미(Zoomies)란 고양이나 개 등 반려동물이 갑작스럽게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행동을 뜻합니다. 의학적으로는 FRAP(Frenetic Random Activity Period), 즉 '격렬하고 무작위적인 활동 시기'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몸에 쌓인 에너지를 한꺼번에 태워버리는 일종의 자연 방전 과정입니다.
제리를 보면 딱 이 패턴이었습니다. 오후 내내 창가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저녁에 제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현관 소리에 맞춰 폭발하듯 뛰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저를 반기는 건가 싶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냥 오랫동안 충전해 둔 배터리가 방전되는 타이밍이 제 귀가 시간과 겹쳤던 겁니다.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고양이일수록 이 현상이 더 두드러집니다. 야외 활동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소모되어야 할 에너지가 몸 안에 계속 쌓이고, 그게 줌미라는 형태로 한꺼번에 터지는 거죠. 제리도 완전한 실내 고양이라 이 부분이 꽤 해당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에 5분씩 나눠서 낚싯대 장난감으로 제리의 사냥 본능을 자극해주고 있습니다. 행동이 눈에 띄게 안정됐습니다.
사냥 본능이 집 안에서 발동될 때
고양이는 수천 년을 사냥하며 살아온 포식자입니다. 캔 사료를 매일 받아먹는 집고양이라도 그 본능은 유전자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포식자 본능(Predatory Instinct)이란 먹잇감을 추적하고, 잡고, 물어뜯는 일련의 사냥 행동 욕구를 말합니다. 이 욕구가 현실에서 해소되지 않으면 집 안에서 허공을 향해 달려드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제리가 창가를 즐겨 보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창밖에서 지나가는 새나 자동차, 심지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나에도 눈이 고정되고, 꼬리가 천천히 흔들리다가 갑자기 방 안을 질주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처제와 아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뛴다"고 했던 바로 그 장면입니다. 제가 옆에서 제리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창문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본능을 제대로 자극해주지 않으면 고양이는 스트레스성 과잉 행동(Hyperactivity)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과잉 행동이란 자극이나 욕구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아 통제를 잃은 것처럼 보이는 과도한 활동 상태를 뜻합니다. 단순히 에너지가 넘치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놀이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는 것만으로도 이 차이가 꽤 크게 갈립니다.
고양이의 사냥 본능을 건강하게 자극하는 방법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낚싯대형 장난감으로 '추격-포획-물기'의 사냥 사이클을 하루 2회 이상 완성시켜 준다
- 퍼즐 사료통(Puzzle Feeder)을 활용해 밥을 먹으면서도 머리를 쓰게 만든다
- 창가에 캣타워를 배치해 바깥을 관찰하는 욕구를 안전하게 해소시킨다
- 장난감을 주기적으로 교체해 새로운 자극을 준다
퍼즐 사료통(Puzzle Feeder)이란 고양이가 발로 밀거나 굴려야 사료가 나오는 구조의 급식 도구입니다. 밥을 먹는 행위 자체를 사냥처럼 느끼게 해서 신체적·정신적 자극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제리에게 처음 써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밥그릇 앞에서 멍하니 기다리던 제리가, 퍼즐 통 앞에선 앞발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꽤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질병 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줌미의 대부분은 에너지 방전이나 본능 때문이지만, 일부는 건강 이상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게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고양이가 뛰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를 보면, 단순한 줌미인지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인지 어느 정도 구분이 됩니다.
대표적인 게 화장실 직후 줌미입니다. 배변을 마친 직후 기쁨의 표시로 뛰는 건 정상입니다. 반면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면서 뛰거나, 특정 부위를 계속 핥으면서 뛰는 건 다릅니다. 후자는 직장이나 요로 쪽 불편감, 또는 피부 감염을 의심해야 합니다.
더 심각한 케이스는 고양이 갑상선기능항진증(Feline Hyperthyroidism)입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란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신진대사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지는 내분비 질환입니다. 중년 이후의 고양이에게 많이 나타나며, 밤에 과도하게 깨어 있거나, 갑작스러운 체중 감소, 이유 없는 과잉 행동이 동반된다면 반드시 수의사 진찰이 필요합니다. 코넬 대학교 수의과대학 고양이 건강 센터에 따르면 고양이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10세 이상 고양이의 약 10%에서 나타나는 흔한 내분비 질환입니다.
인지 기능 장애 증후군(CDS, Cognitive Dysfunction Syndrome)도 노령 고양이에서 주의해야 할 원인입니다. CDS란 뇌 기능이 저하 되면서 기억력, 방향 감각, 수면 리듬이 무너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치매에 가깝습니다. 시력이나 청력이 서서히 나빠지는 것도 고양이를 갑작스러운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노령묘라서 이상한 거겠지"로 넘기면 안 됩니다. 증상이 반복된다면 전문 진료를 받는 게 맞습니다.
줌미 전후로 아래 신호가 보인다면 동물병원 방문을 검토해야 합니다. (출처: ASPCA 고양이 건강 가이드)
- 특정 부위를 반복적으로 핥거나 긁으면서 뛰는 경우
-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날락하거나 배변 후 바로 다시 들어가는 경우
- 체중이 눈에 띄게 줄고 있는데 식욕은 오히려 늘어난 경우
- 밤에 이유 없이 크게 울거나 허공을 응시하는 경우
- 뛰다가 갑자기 멈추고 한 곳을 멍하게 바라보는 경우
제리의 줌미를 보면서 제가 결국 배운 건, 행동 자체보다 맥락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뛰기 전에 뭘 했는지, 뛰는 동안 어떤 신체 반응이 있는지, 얼마나 자주 반복 되는지를 꾸준히 관찰하는 게 어떤 육묘 정보보다 우리 고양이 한테는 훨씬 정확한 답을 줍니다. 이 글에 정리한 내용이 모든 고양이에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우리 집 고양이를 조금 더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수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이상 증상이 보인다면 반드시 수의사 진찰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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