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롱 위까지 올라갈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처가에서 마주친 고양이 제리의 모습은 저한테 꽤 강렬한 장면이었고, 그 경험이 "고양이가 왜 높은 곳을 좋아하는지"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본능이 깊다는 걸 느꼈습니다.
장롱 위 고양이, 진짜 본능이었다
오랜만에 처가에 아내와 함께 방문했을 때, 저는 처갓집 고양이 제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자루를 키우게 되고 나서부터는 다른 집 고양이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제리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장인어른께 여쭤봤더니 장롱을 한번 보라고 하셨습니다. 올려다보는 순간, 장롱 위에서 눈을 반짝이며 저를 내려다보는 제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무리 높은 곳을 좋아한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장롱 꼭대기까지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더 놀라운 건 제리가 장롱뿐 아니라 냉장고, 방 안 김치냉장고, 거실 에어컨 위도 거침없이 올라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행동은 사실 포식자이자 피식자(prey-predator)라는 고양이의 이중적 생태에서 비롯된 본능입니다. 피식자란 다른 동물에게 먹히는 쪽을 뜻하는데, 고양이는 야생에서 독수리나 코요테 같은 더 큰 포식자에게 잡힐 수 있는 동물이었습니다. 동시에 작은 설치류나 새를 사냥하는 포식자이기도 했죠. 높은 곳은 이 두 가지 생존 전략을 동시에 해결해 주는 위치였습니다. 위협은 피하고, 먹이는 내려다보며 찾을 수 있으니까요. 집고양이가 된 지금도 이 유전적 기억은 사라지지 않은 겁니다.
수직공간이 고양이에게 필요한 과학적 이유
일반적으로 고양이에게 넓은 공간을 주면 충분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수평 면적보다 수직 공간이 훨씬 결정적입니다. 수직 공간(vertical space)이란 고양이가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는 높낮이의 차이를 가진 입체적인 환경을 뜻합니다. 같은 면적이라도 오를 수 있는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고양이의 행동 양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위가 특히 인기 있는 이유도 여기서 설명이 됩니다. 가전제품 위는 모터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아랫면보다 온도가 높습니다. 고양이는 체온 유지에 민감한 동물이라 더 따뜻한 곳을 본능적으로 찾습니다. 제리가 냉장고, 김치냉장고 위에서 잠을 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그게 그냥 습관이겠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열원(heat source) 탐색 본능이었던 겁니다. 열원이란 열을 방출하는 물체나 장소를 뜻하며, 추운 계절일수록 고양이의 이 본능은 더 강하게 발현됩니다.
환경 풍요화(environmental enrichment)라는 개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환경 풍요화란 동물이 본능적 욕구를 실내에서도 충족할 수 있도록 환경 자체를 설계하는 방법을 뜻합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실내 고양이 이니셔티브(Indoor Cat Initiative)에 따르면, 고양이에게 수직 공간과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은 스트레스 완화와 문제 행동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수직 공간이 단순한 놀이 장치가 아니라 고양이의 정서 건강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여러 마리를 함께 키우는 다묘 가정에서는 수직 분리(vertical separation)가 갈등 예방에 특히 효과적입니다. 수직 분리란 같은 공간을 높낮이로 나눠 각 고양이가 서로 직접 마주치지 않고도 같은 방에 공존할 수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제리처럼 장롱 위를 차지하는 고양이가 있다면, 그 아래 공간은 자연스럽게 다른 고양이의 영역이 되는 식이죠.
제리와 자루, 같은 고양이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제가 직접 비교해보니 차이가 꽤 컸습니다. 저희 집 고양이 자루는 먼치킨 종입니다. 먼치킨은 짧은 다리가 특징인 품종으로, 신체 구조상 높은 곳에 도약하는 데 일반 고양이보다 불리합니다. 도약력(jumping ability)이란 뒷다리 근육의 힘과 골격 비율에 따라 결정되는 능력인데, 먼치킨은 이 부분에서 다른 품종 대비 제한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루는 책상, 소파 위, 낮은 캣타워 정도가 일상의 전부입니다.
반면 제리는 특별한 훈련 없이 장롱 꼭대기까지 스스로 경로를 찾아 올라갑니다. 아내도 처음 들었을 때 "그게 가능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일반적으로 고양이들이 높은 곳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 수준이 이 정도일 거라는 생각은 못 했습니다. 제리를 보고 나서야 "아, 이게 진짜 고양이 본능이구나" 하는 게 체감이 됐습니다.
산책을 하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캣타워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밖을 보고 싶은가 보다" 정도로 가볍게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고양이도 높은 시야를 확보하려는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하고 있었던 거겠죠. 초보 집사 시절에는 그 차이를 몰랐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에게 수직공간 만들어주는 현실적인 방법
제리 덕분에 자루에게도 조금 더 높은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물론 먼치킨이라 장롱 꼭대기는 무리지만, 지금보다는 분명히 더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준비해보면서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캣타워(cat tree) 선택 시 높이와 안정성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캣타워란 고양이가 오르내리고 쉴 수 있는 수직 구조물로, 횃대 수와 재질, 스크래처 유무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큽니다. 낮은 먼치킨에게는 각 층 간격이 너무 높지 않은 제품이 적합합니다.
- 클라이밍 월(climbing wall)은 벽에 선반을 단계적으로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공간이 좁은 집에서도 수직 동선을 만들 수 있고, 인테리어와 어우러지는 디자인 제품도 있어 활용도가 높습니다.
- 냉장고나 책장 위를 정리해서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 있도록 발판을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단, 책장이 벽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고양이 무게와 도약 충격에 넘어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고정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 창가 해먹(window hammock)은 창틀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설치도 간단하고 비용도 낮아 처음 수직 공간을 시작해보는 분들에게 적합합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고양이가 올라간 뒤 내려오는 경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에티스 펫케어(Zoetis Petcare)에서도 곡선형이나 가장자리가 솟아오른 구조물이 수면 중 낙하 방지에 유리하다고 언급합니다. 올라가는 것만 신경 쓰다 내려오는 동선을 놓치면 관절에 부담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리를 보기 전까지는 수직 공간이 "있으면 좋은 것"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장롱 위에서 눈을 반짝이던 그 장면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건 그냥 편한 자리를 찾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면 지금 집 안에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둘러보시는 걸 권합니다. 낮은 캣타워 하나가 전부라면, 조금만 더 높여줄 방법이 분명히 있습니다.
--- 참고: https://www.zoetispetcare.com/blog/article/why-cats-like-high-places https://indoorpet.osu.edu/c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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