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자루가 베란다 문 틈새로 쏙 빠져나오는 걸 처음 봤을 때 눈을 의심했습니다. 분명히 고양이인데, 그 순간만큼은 완전히 액체처럼 보였거든요. 그냥 귀엽다고만 생각하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이게 실제로 이그노벨상을 받은 연구 주제였습니다. 고양이가 정말 액체인지를 물리학으로 따진 이야기, 그리고 그 유연성이 사실 보호자가 조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까지 정리해 봤습니다.
유변학이 밝혀낸 것, 고양이는 고체도 액체도 아니다
2017년 프랑스 물리학자 마르크 앙투안 파르댕은 '고양이의 유변학(Rheology)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유변학이란 물질의 흐름과 변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이 물질은 고체인가, 액체인가"의 경계를 탐구하는 분야라고 보면 됩니다. 초콜릿이 입에서 녹는 현상, 감자 전분 물을 천천히 만지면 흐르다가 세게 치면 굳는 현상이 모두 유변학의 연구 대상입니다.
파르댕의 출발점은 단순했습니다. 물리학에서 액체의 정의는 "용기의 모양에 맞춰 형태를 바꾸고 그 용기를 채울 수 있는 물질"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고양이는 골판지 상자에도, 싱크대에도, 심지어 화분에도 몸을 맞춰 들어갑니다. 저도 자루가 아이 방 문틈 사이로 나오는 걸 보면서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냥 귀여운 행동이 아니라 물리학적으로도 설명이 되는 현상이었습니다.
핵심 개념은 이완 시간(Relaxation Time)입니다. 이완 시간이란 물질이 외부 힘에 반응해 형태를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합니다. 이완 시간이 짧으면 액체, 길면 고체로 분류됩니다. 고양이는 수 초 단위로 보면 형태를 유지하는 고체처럼 행동하지만, 수십 분이 지나면 용기 안에서 서서히 모양을 맞춰가는 액체처럼 행동합니다. 파르댕의 결론은 "고양이는 관찰 시간의 규모에 따라 고체이기도 하고 액체이기도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반쯤 농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물질 분류의 핵심 원리를 정확하게 적용한 연구입니다. (출처: 이그노벨상 공식 사이트)
이완시간으로 보는 고양이 유연성의 비밀
그렇다면 고양이는 왜 이렇게까지 유연할 수 있을까요? 생물학적인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고양이의 척추는 30개의 척추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의 척추뼈가 24개인 것과 비교하면 꽤 많은 숫자입니다. 거기에 척추뼈 사이 연결 부위가 매우 유연하게 설계되어 있어 몸을 거의 180도까지 비틀 수 있습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쇄골(Clavicle)의 구조입니다. 쇄골이란 어깨 양쪽을 가슴뼈와 연결하는 뼈로, 사람은 이 뼈 때문에 어깨 너비가 고정됩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쇄골이 아예 없거나 근육 속에 묻혀 있을 만큼 아주 작습니다. 이 때문에 어깨 너비를 자유롭게 좁혀 좁은 공간에도 몸을 구겨 넣을 수 있습니다. 자루가 아이 방 문틈, 베란다 문 사이, 숨숨집의 좁은 입구를 당연하다는 듯이 통과할 때마다 제가 신기하다고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 구조에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좁은 공간에 들어가려는 행동 자체도 단순한 습관이 아닙니다. 야생에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 숨었던 본능이 집고양이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감, 골판지 상자의 단열 효과로 인한 체온 조절, 높은 곳에서 주변을 감시하려는 사냥 본능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자루가 아이가 자는 방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도, 그 좁은 문틈 사이로 나오는 것도, 결국 이 본능들이 겹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이의 유연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품종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샴, 오리엔탈 쇼트헤어 등 동양계 품종: 날씬하고 근육질이어서 액체처럼 움직임
- 아비시니아: 활동량이 많고 관절 가동 범위가 넓음
- 벵골: 야생 혈통의 영향으로 신체 유연성이 매우 높음
- 잡종 고양이: 개체 차이가 크지만 대부분 좁은 공간 적응력이 뛰어남
반면 페르시아, 브리티시 쇼트헤어처럼 골격이 굵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품종은 상대적으로 용기 안에 꼭 맞게 들어가기보다는 용기 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루는 잡종 고양이인데도 틈새라면 어디든 통과하는 편이라, 저는 오히려 그 적응력이 위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안전환경 조성, 귀엽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솔직히 제가 한동안 무심코 넘겼던 부분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루가 베란다 문 틈새로 쏙 나오는 걸 보면서 아내와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와, 어떻게 저기서 나와?" 하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반대 상황도 얼마든지 생깁니다. 들어갔는데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요.
특히 여름에 베란다 문을 조금만 열어두면 자루가 들어오겠지 하고 방심했다가, 만약 문이 바람에 닫히거나 자루가 좁은 틈에 끼이면 더위와 탈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양이의 적정 체온 범위는 38~39도(°C)로 사람보다 높고, 열사병(Heat Stroke)에도 취약합니다. 열사병이란 체온이 과도하게 올라 체온 조절 기능이 망가지는 상태로, 심할 경우 장기 손상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출처: Cornell Feline Health Center)
유연성이 높다는 것은 고양이가 보호자가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후로 신경 쓰게 된 점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세탁기, 건조기 사용 전 내부 확인: 고양이가 들어가 있다가 작동되면 치명적
- 베란다 문 열어둘 때 최소 너비 이상 확보 또는 출입 차단: 들어갔다가 문이 닫히는 상황 방지
- 냉장고 문 닫기 전 확인: 좁은 공간으로 인식하고 들어가는 경우 있음
- 가구 배치 시 사각지대 점검: 나오지 못하는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확인
- 숨숨집 입구 크기 점검: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 못하는 구조가 아닌지 주기적으로 확인
고양이가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유연성 때문에 오히려 조심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자루를 키우면서 몸으로 느꼈습니다. 유연하다고 안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 보호자가 먼저 환경을 점검해줘야 한다는 점이 제가 이 주제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고양이가 좁은 틈에서 쏙 빠져나오는 걸 보고 웃는 경험은 반려묘와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습니다. 그 장면 뒤에 유변학, 이완 시간, 쇄골 구조라는 물리학과 생물학이 있다는 게 저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 자루가 또 어딘가에서 액체처럼 흘러나온다면, 귀엽다는 감정 옆에 "이 아이가 나오지 못하는 공간은 없는지" 한 번씩 확인해주시면 어떨까요. 웃음과 점검, 둘 다 챙기는 게 진짜 고양이 보호자의 일상인 것 같습니다.
--- 참고: https://note.com/hogoneko_nyanz/n/n82d065bffbd5?h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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