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이 처음 제리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리가 새벽 5시면 꼭 배 위에 올라온다"는 말씀에 저도 처음엔 우연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고양이가 시간을 안다는 게 단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는 독립적이고 제멋대로라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제리를 보면서 그 생각을 조금씩 고쳐가고 있습니다.
일주기리듬, 고양이에게도 체내 시계가 있다
고양이가 시간을 안다고 하면 "설마, 시계도 못 읽는데?"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리가 장인어른 방에 들어가는 시간을 직접 들은 뒤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새벽 5시, 장인어른이 기상해서 밥을 챙겨주는 시간. 제리는 그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심지어 장인어른 배 위에 올라타거나 앞발을 올려서 깨운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일주기리듬(Circadian Rhythm) 때문입니다. 일주기리듬이란 약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생체 시계를 뜻합니다. 인간뿐 아니라 고양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에게 이 리듬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동물행동학(Ethology) 분야에서 폭넓게 인정되고 있습니다. 동물행동학이란 동물의 행동 패턴과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고양이는 태양의 움직임, 빛의 변화, 그리고 반복된 일상 행동을 기준으로 시간을 감지한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신진대사율(Metabolic Rate)과 시간 인지의 관계입니다. 신진대사율이란 생명 유지를 위해 몸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속도를 뜻하는데, 신진대사가 활발한 소형 동물일수록 시간을 더 느리게 인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Current Biology, 2013). 즉 고양이에게 혼자 있는 두 시간은 우리가 느끼는 두 시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걸 알고 나서부터는 고양이를 오래 혼자 두는 일이 왜 문제가 되는지 감이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고양이에게도 분명히 체내 시계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숫자로 시간을 읽는 것이 아니라, 빛과 루틴이 만들어낸 패턴으로 시간을 읽는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가장 원초적이고 정확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장기기억, 고양이는 생각보다 많이 기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는 기억력이 짧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제리를 통해 그게 꽤 틀린 말일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장인어른과 제리의 관계를 보면 더 확실합니다. 결혼 전에는 저와 장인어른 사이가 서먹서먹했는데, 제리가 생기고 나서는 장인어른이 먼저 말을 걸어오실 정도가 됐습니다. 장인어른과 나누는 대화의 80% 이상이 제리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제리가 언제 왔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같은 패턴에 관한 것입니다.
고양이의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은 실제로 상당히 견고합니다. 장기기억이란 단기적으로 보유하는 정보가 아닌, 오랜 기간 저장되어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기억을 뜻합니다. 고양이는 밥그릇의 위치, 화장실의 위치, 주인이 퇴근하는 시간, 심지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도 기억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양이의 기억 용량이 개보다 훨씬 길다는 연구도 있는데, 일부 연구에서는 고양이의 단기기억이 약 16시간까지 지속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제리가 장인어른만 콕 집어서 찾아가는 것도 이 장기기억과 연결됩니다. 밥을 꼬박꼬박 챙겨준 사람, 매일 5시에 일어나 자신을 돌봐준 사람. 그 기억이 쌓여서 장인어른을 향한 신뢰가 됩니다. 어머니는 잠이 많아서 잘 깨지 않으시고, 제 와이프도 아침엔 비슷한 편이니 제리의 선택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고양이의 기억력을 활용하는 실용적인 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식사 시간을 매일 동일하게 유지하면 고양이가 스스로 식사 리듬을 기억하고 위장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 놀이 시간은 식사 직전에 배치해 사냥 후 식사라는 자연스러운 순서를 기억하게 합니다.
- 외출과 귀가 시간을 가능한 일정하게 맞추면 고양이가 주인의 패턴을 기억해 혼자 있는 시간을 덜 불안해합니다.
- 새로운 환경으로 이사하거나 가구를 바꿀 때는 기존 물건을 일부 남겨 기억의 연속성을 유지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중에서 저도 직접 해봤는데 세 번째가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퇴근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기 시작한 뒤로 제리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는 빈도가 확실히 늘었습니다.
분리불안, 독립적이라는 편견이 오히려 고양이를 힘들게 한다
고양이는 독립적이라서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말, 저도 반려묘를 키우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리와 함께 지내면서, 그리고 장인 장모님 댁에서 제리의 하루를 지켜보면서 그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고양이는 분명히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이란 보호자와의 분리로 인해 고양이가 극도의 스트레스나 불안 반응을 보이는 상태를 뜻합니다. 단순히 외로워하는 수준을 넘어서 식욕 저하, 과도한 그루밍(털 고르기), 부적절한 배변 같은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고양이의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SPCA).
제리가 처음 장인 장모님 댁에 왔을 때, 낯선 환경에서 며칠간 먹는 양이 줄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적응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환경 변화가 고양이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길들여진 종(Domesticated Species)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길들여진 종이란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살며 인간에 의존하도록 진화한 동물을 뜻하는데, 고양이는 독립적으로 보여도 실상 모든 것을 보호자에게 의존하는 길들여진 종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양이를 12시간 이상 혼자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누군가 확인 없이 24시간을 넘기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권고합니다. 장기 여행 시에는 하루 최소 두 번 이상 방문하는 펫시터를 구하거나, 고양이를 잘 아는 지인에게 맡기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물론 이것도 고양이마다 다를 수는 있습니다. 제리처럼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와 원래부터 낯가림이 강한 고양이는 같은 상황에서도 반응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결국 제리가 매일 새벽 5시에 장인어른을 찾아가는 이 작은 행동 하나가, 고양이의 시간 감각과 기억력과 유대 관계를 모두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규칙적인 루틴이 고양이에게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심리적 안정의 기반이 된다는 것, 독립적이라는 편견 뒤에 실제로는 보호자를 많이 의지한다는 것. 고양이를 키우신다면 하루 식사 시간 하나라도 고정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작은 루틴 하나가 고양이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큰 의미가 됩니다.
--- 참고: https://a-z-animals.com/blog/do-cats-understand-and-have-a-sense-of-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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